자유와 평등의 극단화

오늘 아침(22년 1월 6일)에 라디오의 한 프로에서 소개된 연속된 두 개의 뉴스는 매우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이 뉴스들은 대부분의 토론에서 대립하는 두 가지 가치관인 자유와 평등이 다른 말로 효율과 형평이 극단화 될 때의 문제점을 너무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첫번째 뉴스는 이런 것이다.

대선에 나온 특정 후보가 탈모에 대한 치료를 건강보험에 넣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는 뉴스였다.
탈모는 당사자에게 심적으로 매우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치료 비용을 건강보험에 넣겠다는 발상은 너무 극단적이기에,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심적인 고통을 받기 때문에 탈모 치료를 건강보험에 넣어야 한다면, 개인들에게는 비슷한 고통을 수반 할 수 있는 여드름 치료도 넣어야 하고, 심지어 성형수술도 넣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넣는다면 건강보험의 비용은 당연히 높아질 것이고, 이는 결국 수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거나, 아니면 재원을 정말 아픈 사람 즉 꼭 필요한 사람에게 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평등의 극단화이다. 이런 공약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관에 근거한다. 때문에 주관적인 문제, 즉 탈모와 같은 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 간의 평등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또는 효율과 형평의 문제에서 평등(형평성)을 맞추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이처럼 정치인이나 정부가 개입하여 이것을 정책으로 만들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소수 집단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은 모든 이에게 피해가 커진다.

 

이어진 두번째 뉴스는 이런 것이다.

한 약국에서 어떤 약사가 일반적으로 500원이면 살 수 있는 마스크를 고객에게 50,000원에 팔았다고 한다. 또 몇 천원짜리 숙취해소제 3병 역시 15만원에 팔았다고 한다. 결제금액을 확인한 고객이 환불을 요구하자, 약사는 환불 해 줄 수 없고, 돌려받기를 원하면 소송을 걸어서 받아가라고 고객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자유의 극단화이다. 이는 가격 책정과 거래의 자유를 이용하여, 가격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비싼 가격으로 판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상대방의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대비를 하지 못한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피해자는 당장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이런 행동을 한 특정한 사람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그 반작용으로 그 사람으로 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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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토론에서 양측의 입장 대립은 ‘자유와 평등 (효율과 형평)중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는가? ‘라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자유와 평등 중에 ‘자유’ 를 더 중시하는 입장을 보수 또는 우파라고 하며, ‘평등’을 더 중시하는 입장을 진보 또는 좌파라고 부른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한 가지 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면, 위에서 볼 수 있듯 문제가 되는 정책이나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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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평등’이라는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칠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라고 비교해 본다면, 아마도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평등(형평) 쪽에 치우칠 때 일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관이 극단화 되어 나타난 저 약사의 같은 사례는,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해결 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만 해도 뉴스에 나왔고, 아마도 저 약국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전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약국이 어딘지 다 알아서 결국 가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가진 자유를 극단적으로 활용한 개인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의 평등이라는 가치관이 극단화 되어 나타난 정치인이나 정부가 만드는 사례는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일단 선거에서 이긴 정치인이 법을 만들고 예산을 집행해버리고 자기 임기를 마치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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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유’는 누군가 제한하지 않는 한 실제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평등’은 정치 제도 내에서 정치인이나 시스템이 자신의 생각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 정치에서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 같은 선출직 공무원에게는 실제로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때문에 이런 선출직 공무원 즉 정치인들이 저질러 놓은 문제는,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피해로 이어지고, 그 피해가 점차 심해지면 제도의 기능이 손실 되어 결국 꼭 필요한 사람들의 생명과 신체가 위협받는 문제로도 연결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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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나는 상당히 많은 문제에서, 자유가 평등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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