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승리 그리고 한가지 고민

 

어제는 작은 싸움에서 이겼다. 건물을 나오며 잠깐 동안은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후 나는 한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누구에게 이긴걸까?

 

어제 아침 나는 홍대에 있는 KT 고객센터에 갔다. 이유는 산지 석달도 안되어 아무런 외부적 파손이나 충격이 없었는데도 한쪽이 안들리게 된 이어폰에 대해 수리를 요청하기 위해서 였다. 센터직원은 서류를 보여주며 수리 조건에 싸인을 하기를 요구했다. 내용은 이어폰을 맡기면 수리 기사가 보고 사용자의 과실여부를 판단한 후 수리기사의 판단이 사용자 과실이면 거의 이어폰 값에 준하는(34100원!!) 비용을 내고 바꿔주는데, 그것도 2주 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직원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보는 것처럼 이어폰에는 수리기사가 사용자의 과실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외형적 파손여부는 전혀 없고, 무엇보다 회사측에서 보장하는 보증기간인 일년의 반의 반인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어폰값 4만원에 준하는 비용을 수리비용으로 청구하고 그것도 2주후에나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이다.

 

그러자 직원은 자기 회사의 내부 규정이라면서 같은 사유로 찾아온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했다며, 어쩔 수 없으니 서류를 작성하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직원에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으며, 직원분의 말씀은 알겠고, 직원 분께서는 이 문제를 위에서 지시받은 대로 처리 하시는 것 일테니, 이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이 지점에서 윗사람을 불러주시거나 그것도 안되면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한 권한을 가진 곳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직원은 두어차레 같은 주장을 반복하다가. 잠시 기다려 보라며 자신의 상사가 있는 뒤쪽 테이블로 갔다. 잠시 후 돌아온 직원은, 아이폰 이어폰을 들고 와 마침 지점에 전에 받아 둔 물건이 있으니, 이것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이어폰을 받았다. 그리고 직원에게 다른사람들은 그냥 돌아갔을 텐데 이 일로 직원분을 곤란하게 하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나왔다.

 

 

불량 이어폰의 수리비를 두고 벌어진 작은 다툼에서 애초에 내가 생각한 적은 KT 내지는 애플이라는 거대한 회사였다.

 

그리고 내가 맞서고자 했던 것은 이 거대한 회사들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거대한 구조와 우리사회의 소비자주권에 대한 지식이나 자각없음을  이용하여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현실에서 나는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들이 나에게 수리비를 받지도 2주간 시간을 끌지도 않고 바로 이어폰을 내준 것은 내 반론의 타당성을 받아들여지고 자신들의 회사의 잘못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내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아마도  내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이 일이 상관들에게 들어가거나, 문제가 커지는 것이 두려워서 였을 것이다.

 

그들은 내게 준 이어폰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해결했을 것이다. 서류를 조작하여 손실 처리를 하던가 재고를 조작하여 매웠을 수도 있다. 혹은 일을 처리한 직원이나 직원에게 지시한 상사가 자신들의 사비를 들이거나, 재량권이 있는 비용을 돌려서 처리했을 수도 있다.

 

다음에 또 다른 고객이 온다면, 그 고객이 나처럼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 이상은, 다시 불공적한 회사의 약관을 들이밀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그에 따른 부당한 이익을 취할 것이다. 만약 또 어떤 고객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직원들이 손해를 감수할 것이다.

 

물론 직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회사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 해야 하고, 그로 인해 고객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당하거나 자신들이 손해를 감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부 직원들은 자신이 보스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고, 그 결과가 자신들에게 안좋은 방향(실직이라던가 어떤 형태의 불이익)으로 미칠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 때문에 거대 회사에 불공정한 이익추구 행위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자 했던 나의 행동은, 단지 말단 직원 몇명을 곤란하게 만들 뿐이 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며 사회구조와 조직의 거대함을 직면하며 자신들이 그에 맞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작은 존재라는 것은 학습한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 용기를 가진 젊은이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현실에 대한 안주만을 생각하는 나이든 어른으로 변해간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꿈이고 열정이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라고 말한 체 게바라의 말처럼 우리는 가슴 속에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언젠가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꿈을 이룬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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